중국의 「석채산」(石寨山)의 유적 이야기
중국의 「석채산」(石寨山)
예전, 중국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 남쪽 48km 떨어진 곳에 석채산(石寨山)이라는 지역이 있었다. BC 329년 경, 중국의 한 장군이 운남(雲南)에 있던 전(愼)왕국을 정복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다른 제후(諸侯)들의 군대로 막혀버려서 그 장군은 운남에 머물게 되었고, 결국 전나라의 국왕이 되었다. 이 장군의 부하들은 이 지역에 중국문화를 전파하게 되었다.
*제후(諸侯) - 중국 주(周)나라의 천자로부터 각 지역을 분봉받아 그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사람을 일컫는 말.
1955년, 고고학자들이 석채산 지역에 있는 전나라 귀족들의 무덤을 발굴하면서, 중국의 전통문화와 별개로 발전한 이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된다. 무덤 속에서는 죽은 사람과 함께 매장된 부장품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이 지역에는 청동기 문명이 존재했으며 그 주민들은 철을 사용할 줄도 알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 사람들의 기술과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의 무기에는 얕게 돋을새김한 동물의 그림이 장식되어 있었고,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자패(紫貝, 화폐의 일종)를 넣는 그릇으로 사용된 북모양의 청동 용기였다.
이 용기의 머리부분에는 조그마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들의 일상생활이나 종교 생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 중 일부 용기에는 여자가 제물을 받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그들의 사회가 여성 지배 사회였을 가능성도 나타낸다. 그리고 또 어떤 용기에는 사람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운남은 7세기 말에 중국에 예속되고, 그 후 쿠빌라이 칸에게 정복되어 식민지가 되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중국 문화에 동화(同化)되었지만, 일부가 국외로 망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동남아시아와 폴리네시아에서도 청동제 북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지역에서도 고대의식으로 인간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 운남 사람들의 문화가 전파된 것일까라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내륙 오지에 살았던 사람들이 과거에 바다를 다녀본 경험이 없이 이렇게 먼 곳까지 갈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남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