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의 페트라(Petra) 유적

요르단, 페트라(Petra)

요르단-페트라-암벽을-깎아-만든-나바테아인들의-무덤이-들어-있는-사원
암벽을 깎아 만든 나바테아인들의 무덤이 들어 있는 사원

요르단의 페트라(Petra), 남서쪽으로 150km 떨어진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이 도시는 수세기 동안 잊혀져 있었다. 옛 기록에는 페트라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그 위치 또한 다른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잊혀져 있었다.



그러던 중 1812년, 스위스 탐험가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 (Johann Ludwig Burckhardt, 1784년 11월 20일 ~ 1817년 10월 15일)’가 현지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좁고 깊은 골짜기를 통과한 끝에 웅장한 유적을 발견한다. 이 유적은 헬리니즘 양식의 건물로 생각되는데, 큰 암벽을 파서 건설된 것이었다. 이 건물의 정면에는 문들이 있었고, 이 문을 통해 복도로 들어가면 바위 속에 파여진 방들이 나타났다. 이 방들은 대부분이 비어 있었으나, 그 중에는 계단이 있는 방도 있었다. 이 탐험가가 발견한 유적지가 곧 페트라의 유적이라는 것이 밝혀낸다.



영국의 시인인 ‘존 윌리엄 버곤 (John William Burgon , 1813년 8월 21일 – 1888년 8월 4일)’ 신부는 페트라를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도시로 묘사했는데, 이는 페트라의 아름다움을 감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바테아인들은 성스러운 장소를 산꼭대기에 건설했으며, 바위를 깎아 계단을 만들어 이곳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이 성스러운 장소에는 14m X 6m 크기의 제단이 있었고, 원래는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제단 위에는 4계단이 있고, 사암대가 튀어나와 있어 제물을 바친 곳으로 추정되었다.



로마의 통치로 인해 나바테아인들의 독립은 종말을 맞이했지만, 대상들의 통행로 변경 전까지 페트라는 번영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상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페트라의 번영은 점차 감소하고, 외부의 침입과 약탈을 겪으며 결국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이 도시의 바위로 파여진 방들이 무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목적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